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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추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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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88CC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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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CC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인터뷰] 단식농성 중인 88CC 분회 김은숙 분회장
배혜정 기자 bhj@vop.co.kr 09-10-02
부당해고에 맞서 서울 여의도 국가보훈처 앞에서 17일 째 노숙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여성노조 88CC 분회장 김은숙(38)씨가 도로에 널린 은행을 줍는 일로 아침 운동을 대신하고 있었다.
익을 대로 익어 저절로 뚝뚝 떨어지는 은행을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기 전에 얼른 주어 패트병에 넣어버린다. 아무리 노숙이라지만 잠자리를 겸한 농성장 주변에서 지독한 은행 냄새가 나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 10kg이나 빠져 기운이 없지만 이렇게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굳는다. 날씨가 춥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추석이 코 앞이지만 무기한 단식 농성이라 은숙씨는 연휴 동안에도 보훈처 앞을 지킬 예정이다. 한 끼만 굶어도 큰일 나는 줄 아는 칠십 노모에겐 "평생에 한 번 갈까 말까한 좋은 연수가 있으니까 다녀오겠다"고 둘러대고 나왔다. 석달 코스라고 하려다가 너무 길어지면 의심할까봐 한달 코스라고 했다.
언니한텐 사실대로 이야기 하려다 펄쩍 뛰며 말릴까봐 며칠 전부터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엄마가 농사만 짓던 분이시라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심하세요. 저한텐 그게 다행이기도 하지만요. 언니한텐 오늘 전화하려구요."
9월의 마지막 날, 국가보훈처 앞 농성장에서 은숙씨를 만났다.
고달픈 경기보조원 삶..노조결성으로 '희망'
충남 금산 출신인 은숙씨는 대전에서 자취하며 학교를 다니다 방세 내는 일이 만만치 않아 스무살에 서울 언니 집으로 들어갔다. 취직은 예나 지금이나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일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다 어느 날 언니랑 대판 싸우고 그 길로 친구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다 집안에 적지 않은 빚이 있다는 걸 알았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신문을 뒤적거리다 눈이 번쩍 뜨였다.
'하루 4시간 근무, 월 90만원 보장'
88CC 골프장에서 경기보조원(캐디)를 뽑는다는 광고였다. 한달 내내 아르바이트로 20만원 안팎을 벌었는데, 하루 4시간 근무에 90만원이면 당시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정신차리고 바짝 돈을 벌면 저녁엔 학원도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시즌인 5월에 입사한 은숙씨는 규칙을 숙지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라운드에 투입됐다. 1991년이었다. 그렇게 몇 해를 보내면서 광고에서 봤던 월 90만원은 시즌에만 벌 수 있다는 걸, 경기보조원이 만성고용불안에 떨면서 살아가야 하는 직업이란 걸 알게 됐다.
샷거리를 잘못 알려줬다고 내장객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하고, 회사에 항의를 하면 되레 해고를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우리 현실이 이렇구나"라는 한계와 무기력함을 느끼던 은숙씨에게 99년은 인생의 방향을 전환시켜준 해였다. 회사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다 조기 명예퇴직을 종용받은 선배 언니들이 99년 노동조합을 만들어 여성노조에 가입을 했던 것. 은숙씨도 창립멤버가 됐다.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사내 경기보조원 근로조건을 규정한 수칙이 만들어지면서 파리 목숨처럼 잘려나가는 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2003년까진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 뒤로 2008년 초까지 노사관계는 평안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88CC으로 이직하고 싶다는 경기보조원들도 많아졌다.
88CC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그러나 새정부 들어 그해 6월 사측의 임원진이 교체되면서 88CC의 노사관계는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첫 단계로 사측은 골프카 리모콘을 빌미로 회사에서 요구하는 서약서를 강요했다.
"어느 날 골프카 리모콘을 다 수거해가더니 '안전사고의 발생시 모든 책임은 경기보조원에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서약서에 사인을 하면 리모콘을 돌려주겠다는 거에요. 골프가방을 실어놓은 골프카를 리모콘으로 작동시켜 대기시켜놓는데, 리모콘이 없으면 일일히 뛰어가서 해야 하거든요. 급하게 뛰어가다 다치기도 하고, 대단히 힘이 드는 일이죠."
사측은 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내용도 안보여주고 무조건 쓰라는 거에요. 골프장 안전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보조원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거죠. 뭘 물어보면 문제 있는 사람으로 찍히니까 신입들은 내용이 뭐냐고 묻지도 못하고 그냥 쓰고."
그러던 9월 경기팀장이 경기 진행이 느리다는 이유로 고객이 있는 자리에서 경기보조원에게 소리를 질렀고, 기분이 상한 고객이 회사에 항의한 것이 발단이 돼 애꿎은 경기보조원이 징계를 받았다. 1달 출장 정지를 받은 이 경기보조원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록 출장정지는 무기한으로 늘어났고, 결국 해고됐다.
부당 해고에 '뚜껑'이 열린 조합원들은 88CC 소유주인 국가보훈처 게시판에 글을 올렸지만 사측은 이를 빌미로 두 차례에 걸쳐 조합원 52명를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무기한 출장유보 징계를 내렸다. 사실상 해고조치였다. 은숙씨 등 조합간부 3명은 해고됐다.
이 중 노조 탈퇴를 한 10여 명은 다시 회사로 복귀했는데, 전형적인 사측의 노조 무력화 조치였던 셈이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노동행위 판결도 나왔지만 사측은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했고, 은숙씨를 비롯한 40여 명의 조합원들은 1년 째 거리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해고되지 않고 회사에 남아 있는 20여명의 조합원들에게도 시련은 있다. 단협에 따라 가운을 지급하기로 돼 있던 사측이 가운을 사입으라고 요구했고, 조합원들은 당연히 거부했다. 그러자 사측은 비조합원들에게 "일단 사입으면 나중에 돈을 주겠다"고 해 비조합원들은 파란색 가운을 입게 했다. 조합원들은 다 낡은 빨간색 가운을 입고 한 여름을 버텼다. 내장객들도 가운색을 보고 조합원, 비조합원을 가려냈다. 그래도 그렇게 버틴 덕에 조합원들은 최근 파란색 가운을 '쟁취'했다.
안팎으로 잘 버텨주고 있는 조합원들 덕에 은숙씨도 꿋꿋하게 단식농성장을 지킬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임원진 한 명이 바뀌었는데 그 분이 회사가 강요하고 있는 서약서 내용의 문제점들을 검토해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구요. 그 말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볼 수밖에 없는 거죠."
88CC분회와 여성노조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사례 등을 모으며 다가오는 국정감사를 준비하고 있다. '최소한의 상식'이 국회 안에서 통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은숙씨의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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