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
권익위 ‘시정권고’
부패방지와 국민고충 처리를 담당하는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하나 내놓았으나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정권고 최다 불수용 기관은~’이라는 제목의 이 자료는 권익위가 국민 고충민원을 받아 조사를 거친 후 해당 공공기관에 시정을 권고했지만 수용되지 않은 사례를 집계한 것. 2008년 1월1일부터 2009년 3월31일까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총 1452건의 시정권고를 했으며 이 중 160건, 11%가 불수용됐다.
뒤집어, 시정권고 수용률이 89%라면 만족스러운 결과라고 할 수 있어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아도 무방하다. 하지만 이 자료가 눈길을 끌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어느 기관보다 공기업으로 불리는 정부투자기관의 불수용률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전체 불수용 160건 중 106건이 정부투자 기관 몫이었다.
최다 불수용률 기관은 근로복지공단(56.5%)으로 평균보다 45.5%포인트 높았으며 SH공사(25%), 한국토지공사(16%), 한국도로공사(11.1%) 순으로 뒤를 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고임금, 무한 복지혜택, 퇴사율 제로 등으로 신이 내린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들이다. 이들과는 달리 경찰청과 서울시, 강동구청은 권익위의 시정권고를 100% 수용하고 있었다.
어째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 권익위는 이들 공공기관이 시정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이유로 ‘예산부족’을 들고 있다고 적고 있다. 바로 ‘돈’이 문제였다. 이들 기관의 업무 특성상 국민 민원이 돈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권익위가 불수용 사례로 들고 있는 ‘추가 상병(傷病) 불승인’, ‘이주자 택지 공급 거부’, ‘가산 보상금 지급 권고 거부’ 등은 모두 금전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었다.
‘돈 안드는 것은 수용하고 돈 드는 것은 수용하지 않는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이들 기관이 만에 하나라도 이런 불합리한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면 이는 국민 권익에 대한 중대 도전이며 국민 권익 보호를 위한 권익위의 설립 취지 역시 여지없이 갉아먹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억울함이 없는 나라, 깨끗한 사회’는 권익위가 지향하는 목표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정부·공공기관·공기업 등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고 있다면 항상 국민의 편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고 할지라도….
[[최범 / 논설위원]]
기사 게재 일자 2009-06-0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