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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인재 '용광로 사고' 청년 죽음, 누가 책임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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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 환영철강에서 용광로 안으로 떨어져 숨진 김아무개(29)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결국 예견된 인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용광로 위에 난간만 설치했어도 꿈 많은 젊은이가 생명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환영철강은 뒤늦게 사고가 난 후, 관할 노동청의 시정조치를 받고 난간 설치 작업을 진행했으나 이미 귀중한 목숨을 잃은 뒤였다.
"난간만 설치했어도...", 노동청 시정조치 받고 뒤늦게 난간 설치
"관할 노동청의 책임 떠넘기기식 부실안전점검이 부른 예견된 산재"
충남 당진 환영철강 용광로에서 사고사 한 김 아무개씨의 빈소ⓒ 당진시대 김민선
환영철강에서의 끔찍한 사고는 노동부의 관리감독 소홀과 사업주의 안전 의식 미비 등이 원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형적인 산업재해인 것이다. 또 사고 발생 후 사업주가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려 하고, 사고를 덮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등 구태의연하고 부적절한 대응 모습을 보였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미경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환영철강은 충남지방노동청 천안지청의 산업재해 감소를 위한 '100일 집중기간'(6.7~9.14) 점검 대상 사업장에 속했다. 그러나 환영철강은 점검 대상 사업장에서 제외됐는데, 그 이유는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에서 관리하는 공정안전보고서 점검 대상 사업장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환영철강이 예방센터의 점검 대상 사업장으로 점검을 받을 터인데, 굳이 환영철강을 천안지청의 집중기간 점검대상에 넣을 필요가 있겠냐고 생각해서 제외한 것이다. 노동부 근로감독관 등 행정인력도 부족한 마당에 행정의 중복을 피하기 위한 고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8월 24일 예방센터의 점검에서는 주로 가스배관 설비 등에 대한 점검만 이뤄지고 용광로 주변 시설에 대한 안전점검은 실시하지 않았다. 예방센터의 점검 자체가 주로 가스배관 설비 등에 대한 점검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방센터의 점검이 있고 난 후 2주 뒤, 그리고 천안지청의 집중 점검기간에 포함되는 7일 새벽 안전점검의 사각지대에서 중대 재해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미경 의원은 "이번 사건은 관할 노동청 사이의 책임 떠넘기기식 부실안전점검으로 인해 발생한 예견된 산업재해"라고 지적했다.
사건 발생 후, 감추기 급급하고, 노동자에게 책임 떠넘기고
이보다 더 크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사고가 발생한 후 회사측이 보인 태도의 문제다. 회사는 사고 발생 소식이 몇몇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더 이상 이슈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기자가 충남 당진 김 씨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회사 관계자들은 "방송에서 이니셜로 H회사라고 보도하면 될 것을 굳이 환영철강이라고 회사 이름을 다 보도할 필요가 있냐", "이제 그만(취재)해라, (언론에) 나와봤자 좋을 것도 없는데"라고 하며 짜증섞인 반응을 보였다.
또 <민중의소리>는 유가족들이 현장 안전장비 소홀 등의 문제를 지적하던 터라, 공장에 출입해 사고현장을 파악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했다. 그러나 공장출입에 협조하겠다던 환영철강측이 태도를 바꿔 끝내 공장 출입을 허가하지 않아 공장 안으로는 접근조차 하지 못했다.
자기 회사 소속 노동자가 일을 하다 끔찍한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져봤자, 회사 이미지에 먹칠만 한다는 생각으로 사건을 감추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유가족과 보상과 장례 문제로 협상을 하면서 보인 회사의 태도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회사는 자식을 잃은 상실감에 빠져 있는 유가족들을 만나, "개인 과실이 70%이다"라고 주장했다. 어떻게든 회사책임을 줄이려 한 것인데, 회사는 얼마 안가 유가족에게 개인과실이라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 협상 등을 마무리 지었다.
유족들은 1600도의 열기가 남아있는 용광로에서 김 씨 유골의 일부를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 12일 김 씨 유골을 충남 당진 납골묘에 안장했다. 회사는 유가족에게 위로금과 장례비 등을 지급했지만, 그 어떤 것도 김 씨의 죽음에 대한 보상은 될 수 없고, 김 씨를 잃은 유가족의 아픈 마음을 달랠 수는 없다.
더구나 김 씨는 내년 봄 결혼할 예정이었던 이제 서른의 젊은 청년이고, 그의 부모가 마흔이 넘어서 얻은 늦둥이 외동아들이다.
민주노총과 산업안전보건단체 등이 15일 오전 청계광장에서 용광로 사고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면서 재발방지와 산업재해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민중의소리
산재 사망률이 한국의 14분의 1에 불과한 영국은 '기업살인법' 제정, 구속 처벌
15일 민주노총과 산업안전보건단체,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등은 청계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업재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환영철강 사고가 끔찍한 중대재해이기도 하지만, 산업재해는 비단 환영철강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2009년 통계에 의하면, 사업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1,401명, 질병으로 780명 등 모두 2,181명의 노동자가 일 때문에 숨졌다. 하루에 6명꼴로 안타까운 죽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중 김씨 처럼 서른 살도 안 된 젊은 노동자는 132명에 달한다.
한국은 OECD 가입국가 중 산재발생률이 1위다. 산재 예방에 투자도 안 하고, 처벌도 미약하기 때문이다. 관련 법이 없는 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안전조치를 위반해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실에선 법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고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산업안전보건단체 관계자들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현실화하지 않는 한 '안전 선진국'의 꿈은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영국의 사례를 언급한다. 영국은 산재 사망률이 한국의 14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노동자 1만 명당 안전사고 사망률은 1.01명인데 반해, 영국은 0.07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영국은 2008년 '기업살인법'으로 불리는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안전조치가 미비한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를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처벌토록 하고 있다. 이윤만큼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도 중시하도록 사업주의 인식을 바꾸기 위한 감독 당국의 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웅재 기자 jmy94@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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