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파업 참가자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
50년 '폭격 소음' 시달린 매향리 주민보다 우울증 수치 높아
배혜정 기자 bhj@vop.co.kr
"파업은 끝났지만 악몽은 끝나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파업이 종료된 지 한달이 지난 가운데 파업 노동자의 42.8%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으며, 심리상담이 필요한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상을 보이는 경우는 71.1%, 이 중 정신과 치료가 시급한 '고도 우울증' 환자는 41%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노동건강연대,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등이 지난 달 27일 쌍용차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257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실태를 조사한 결과로, 50년 동안 폭격장 주변에 살면서 정신적 피해를 경험한 매향리 주민보다 6~7배 높은 수치라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50년 '폭격 소음' 시달린 매향리 주민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수치 높아
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채무상태와 파업 중 채무의 증가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에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채무가 많을 수록, 파업 중 채무가 증가가 많을 수록 정신건강은 악화됐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88.8%는 경제적 채무상태에 놓여있으며, 늘어난 빚의 규모는 평균 1,400만원에 달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인 186명 중 102명이 빚이 있으며, 이 중 84명은 고도우울증을 보였다. 여기에 응답자 대다수가 사측으로부터 손배가압류가 걸려있는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속노조 남택규 수석부위원장은 "7개월 넘게 급여가 안나왔고, 조합원 282명에겐 50억 손배가압류가 청구된 상태"라며 "채무상태도 심각하지만 사측의 손배가압류 상황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회사의 회유와 협박,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불안감 등도 정신건강 악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50.2%가 파업기간 중 회사로부터 회유나 협박을 받았으며, 회유의 내용은 '가족을 통한 회유와 명예퇴직, 희망퇴직'이 주를 이뤘으며, 손배가압류, 고소고발 및 구속, 공권력 투입 등의 협박을 받았다.
또 파업종료 후 경찰조사를 받은 조합원들은 조사과정에서 '진술을 잘하면 회사에 불이익을 안 받게 해주겠다'는 회유에서부터 '구속시킬 것이다. 아는 대로 불어라'는 등의 협박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정신과 치료를 받던 파업 참가 조합원이 자실을 시도했던 것도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김갑수 쌍용차지부 보건부장은 "노사 대타협에도 불구하고 파업 참가자에 대한 사측의 불이익과 경찰의 편파강압수사로 고통을 받고 있다"고 "파업은 끝났지만 악몽은 계속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42.8%라는 건 어마어마한 수치"라며 "숫자에 콤마(,)를 잘못 찍은 줄 알았다"고 놀라워했다. 임 소장은 "노동자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빠른 의학적 조치들이 시급히 진행되어야 하며, 채무탕감을 위한 경제적 지원, 노사 합의 사항이 성실히 지켜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따라 노동건강연대는 지난 5일부터 파업 참가 조합원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집단치유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권용식 노동건강연대 전문위원은 "스트레스 감소, 이완 프로그램, 웃음치료, 마술치료 등 심리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며 "대상자에 따라 전문적인 심리상담과 정신과 진료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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